믿음이야말로 하나님의 역사하심의 증거라니 이젠 신물이 난다

결국 믿음 그 자체가 야훼나 알라 존재의 증거라는 궤변이 여기서도 반복되고 있으니 안타까울 뿐이다.
이는 결국 객관적으로 증거를 보여줄 수 없는,
그럴 필요 조차 없다고 하면서 더욱 맹목적인 믿음만을 강요하는 이런 류의 종교의 본질과 한계를
우리에게 다시 한 번 확인시켜주는 전형적인 사례라 하겠다.
의심이 거부되고 객관적 자기 비판, 자정 및 수용능력이 결여된 이런 종교들은
그 반대의 가치를 교조로 삼는 과학의 발전에 따라 점차 그 지리한 생명을 유지할 기회를 잃어가면서
그것이 원래 자리해야 했던 윤리나 철학, 문학의 한 분야로 내려 앉게 될 것이다.

유일신이 '내려준' 원시적인 계율들을 맹목적으로 믿는 자들과 그 집단에 의해 벌어진
전쟁과 학살, 무자비한 폭력들은 언제고 끝날 것이고 또 마땅히 그래야만 한다.
크리스천들은 작금의 전쟁의 원인과 책임이 대부분 무슬림과 그릇된 그들의 종교에 있다 주장하겠지만
무슬림들의 생각은 그렇지 않을 것 같다. 유태인들은 또 어떠하겠는가?
기독교, 이슬람교 그리고 유태교.
이 세 종교들은 그 뿌리를 공유하면서도
서로에게 무자비한 폭력을 행사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.
악한 자들에 맞서 정의로운 싸움을 하는 자들에겐 큰 상이 있을 것이라며
서로에 대한 폭력을 독려하기까지 한다.
그들은 죄악과 폭력의 원인을 그들 밖에서 찾고 있으며
이 원인을 제거함으로써 사랑과 평화를 이루려 한다고 주장하지만,
이 종교들의 가르침과 행동은 서로에게 새로운 분쟁만을 야기할 뿐,
불가능하다.
폭력은 사랑, 자비 이런 것들만큼이나 이 종교들의 굳건한 본질이기 때문이다.
피할 수 있었던 끔찍한 죄악들이야말로
이들 종교에 활력을 불어넣고 또 그 생명을 유지시키고 있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.

종교들은 강력한 meme으로서 자기 존속을 위한 도구로 인간을 소모하고 희생시키고 있다.
그러나 결국 인류는 진화의 과정 -과학의 발전이라 불러도 좋겠다- 속에서 이들 종교를 포기하는 것이
더욱 효율적인 자원의 배분임을 필연적으로 인식하고 이들을 포기하게 될 것이다.

종교라는 허상에 투자해야만 했던 인류의 자원들이 좀 더 인류 자체를 위해 사용되는 시대.
이러한 시대엔 폭력을 지양하고 의심과 비판을 수용할 수 있는 종교만이
최소한의 종교로서 살아남을 기회를 가질 것이라 생각한다.
기복행위를 위한 투자성 신앙 활동을 유도하는 것이 아닌
과학과 함께 인류를 더 성숙시키고 자유롭게 하는 그 무엇으로서의 종교.
이는 철학으로서의 불교, 힌두교의 모습과 무척 닯아 있지 않을까.
유기적인 관계. 상대적인 가치. 자유와 평등. 끊임없는 의심과 탐구.
이런 것들이야말로 종교의 미덕이 되는 시대를 희망한다.

by Sandollim | 2010/05/24 07:47 | sandollim | 트랙백 | 덧글(0)


< 이전페이지 다음페이지 >